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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칠성로상점가

칠성로 히스토리 칠성로의 유래 | 5~80년대와 현재

문화와 낭만의 중심지, 제주의 명동 '칠성로'

참조 : 글. 김정택 세종의원 원장

'칠성로'라는 지명은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따지고 보면 칠성로는 제주의 중세사와 근대사 그리고 현대사의 현장이다. 칠성로의 상징 7개의 별과 ‘칠성로’라는 지명도 모두 먼 옛적 탐라시대의 ‘칠성단(七星壇)’에서 유래됐다. 조선시대 ‘성안’ 부터 가까운 옛적의 중면과 제주읍과 근래의 작은 제주시와 오늘의 특별자치도의 광역 제주시까지 제주의 그 오랜, 지나간 시절의 역사와 현대의 역사가 어떠했던가를 어느 다른 지역보다도 생생하게, 진하게 말해 주는 거리가 다름 아닌 칠성로다.
'칠성로'는 언제부터 유래했을까
칠성로는 제주도의 상가로만 따지면 지금도 대표될 만한 거리이긴 하다.
일제강점기부터 근대적인 상점들이 들어섰다.
그래서 유명 상점들이 거의 칠성로에 자리를 잡아
제주 상권(商圈)의 중심지였고 ‘제주 상권의 원조지’였다.
제주의 상권(商權, 경영권)도 이곳에 집중되고 있었다.
묵은 시대의 ‘칠성통’은 예외 없이 일본인 거리였다.
60년대 후반까지도 일본식 가로명(街路名)이었다.
‘혼마치(本町通)’, 칠성통, 원정통(元町通), 남문통, 서문통, 동문통 등은
1960년대 후반부터서야 통(通, とおり)이 로(路)로 바뀌었다.
1960년대 칠성통 및 일제강점기 칠성통에 위치해 있던 상점
일제강점기에 큰 상점들은 일종의 종합상사여서 잡화와 문방구 등을 취급했다.
물론, 귀금속·시계류 판매업은 원조격인 미즈하(水羽)시계점, 모리(森)시계점 등이 자리를 잡은 이래 비슷한 전문점들이
많이 생겨 칠성로의 전통을 고수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칠성통 상점의 핵심은 예부터 옷가게였다.
1950년대 중반에 양장점이 생겨서 성안 사람들이 투피스 같은 옷을 맞춰 입었다. 유명 양장점으로는 민들레양장점,
노라노양장과 1970년대의 하니양장점이 있었다.
결혼식 예단 같은 선물 옷감(양장지감이나 한복감)이 있으면 신화양장점에서 만들어 입었다.
광복과 6·25사변 후 1955년 경까지도 한양상회(잡화상)를 통하여 공무원들에게 급료 대신 양복천을 배급한 적이 있었다.
남자들은 칠성통 봉라사나 동하양복점을 이용했다.
현재도 유명 브랜드의 의류점, 액세서리점은 밀집되어 ‘패션 1번가’로 그 명맥은 이어가고 있다.